도강 김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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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. 개요 [편집]
전라남도 강진(康津)의 옛 이름인 도강(道康)[2]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, 시조는 신라 경순왕의 4남으로 전해지는 김은열(金殷說)[3]의 7세손(=6대손)으로 고려 때 문하시중을 지낸 김희조(金希祖)이다.[4]
다만, 증보문헌비고에는 도강 김씨를 강진 김씨의 별칭으로 기재했으며, 그 시조를 고려 공민왕 11년(1362) 문과 임인방(壬寅榜)에 동진사 19위로 급제하여# 선공서령(繕工署令)을 지낸 김자앙(金子盎)이라고 하는데, 김자앙은 일명 김익(金益)으로서 시조 김희조의 9대손이라 한다. 또 호군(護軍)을 지낸 김안경(金安敬)과 부윤(府尹) 김분(金汾) 등이 그 일파를 이루었다고 하는데, 이들은 각각 시조 김희조의 6대손과 10대손으로서 김분은 김자앙의 아들이다.김분의 고려 문과방목
그 밖에 검교군기감(檢校軍器監) 김익지(金益之)와 도염서령동정(都梁署令同正) 김승리(金承利)도 강진 김씨의 일파를 이룬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, 이들 또한 각각 시조 김희조의 4대손과 6대손이다.
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, 전국에 37,666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.[5]
다만, 증보문헌비고에는 도강 김씨를 강진 김씨의 별칭으로 기재했으며, 그 시조를 고려 공민왕 11년(1362) 문과 임인방(壬寅榜)에 동진사 19위로 급제하여# 선공서령(繕工署令)을 지낸 김자앙(金子盎)이라고 하는데, 김자앙은 일명 김익(金益)으로서 시조 김희조의 9대손이라 한다. 또 호군(護軍)을 지낸 김안경(金安敬)과 부윤(府尹) 김분(金汾) 등이 그 일파를 이루었다고 하는데, 이들은 각각 시조 김희조의 6대손과 10대손으로서 김분은 김자앙의 아들이다.김분의 고려 문과방목
그 밖에 검교군기감(檢校軍器監) 김익지(金益之)와 도염서령동정(都梁署令同正) 김승리(金承利)도 강진 김씨의 일파를 이룬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, 이들 또한 각각 시조 김희조의 4대손과 6대손이다.
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, 전국에 37,666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.[5]
2. 분파 [편집]
- 전공조사공파(典工曹事公派) : 파조 일(鎰). 후손들은 강진군 강진읍을 비롯한 전라남도에 산재.
3. 집성촌 [편집]
4. 근·현대 인물 [편집]
[1] 강진 4,845명, 도강 31,496명, 도광 1,260명, 탐진 65명 등[2] 신라 경덕왕 16년(757) 이래로 양무군(陽武郡)이었다가, 고려 개국 후 태조 23년(940) 도강으로 개칭하였으며, 조선 개국 후 태종 17년(1417) 탐진(耽津)과 합병되어 지금의 이름인 강진이 되었다.#[3] 김은열을 시조로 하는 집안은 경주 김씨, 법흥 김씨, 전주 김씨 등이 있다.[4] 은열 – 3남 염(濂) – 품언(稟言) – 차남 순보(順輔) – 차남 세우(世羽) – 봉익(鳳翊, 의전義傳이라고도 함) – 희조(希祖) – 필(泌) – 구(坵) – 무덕(武德) – 2남 성지(誠之) – 도(濤) 순으로 계보가 이어진다.[5] 강진 4,845명, 도강 31,496명, 도광 1,260명, 탐진 65명 등[6] 김생기 전 정읍시장, 김원기 전 국회의장 등이 이 마을 출신이다.[7] 김택술 전 국회의원이 이 마을 출신이다.[8] 현 평성시 송령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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